(1편) 조직의 사일로를 극복하기

“조직에서 서로가 서로를 해치지 않는다는 믿음은 꽤 중요하다. 그래야 서로 가드를 내리고 대화라는걸 할 자세가 된다.” 맞는 말입니다. 
여기에 대한 누군가의 답변은 “사장이 제정신이 박혀서 사내정치하는 것들을 쳐내야…” 였습니다. 이것도 굳이 틀린말은 아닙니다. 

이런 조직간의 견제가 극대화되는 현상을 우리는 사일로 이펙트 라고 부릅니다. 
한때 이 사일로 이펙트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조직문화가 유행하였습니다. 저는 여전히 맞는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OKR도 사일로 이펙트를 극복하는 좋은 방향이자 지침일거라고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왠지 제대로 작동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OKR은 인센티브를 측정하기 위한 개인의 성과평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거든요. 

오늘은 이 사일로가 자연발생적인 것인지, 어떤 증상(?)을 보여주는지,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참고로 저는 ‘사내정치’는 조직의 필연적인 부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사내정치하는 것들’을 쳐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내정치’는 권장할 성질의 것은 아니지만 동시에 없앨수도 없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관리해야 합니다. 뭐랄까…. 혈압을 혈압약으로 평생 관리(?)하시는 것처럼요… (아름다운 비유는 아니로군요) 


먼저 사일로 이펙트의 피해/폐해가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대표적으로는 제품을 출시하는 일정의 지연이 발생됩니다. 여러 사일로의 의견을 모으고 통합하고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동의와 합의에서 빠지게 되면 그 사일로는 향후 협력에서 걸림돌이 되기 일쑤이고 이런 문제를 경험하는 조직에서는 매 단계마다 해당 조직 담당자의 sign off를 받겠다는 야심찬 프로세스를 도입하기도 합니다. 전 단 한번도 이 sign off가 제대로 돌아가는 꼴을 본적이 없습니다. Sign off를 하기 위해서 그 조직은 검토를 하는 시간이 들어가고, 그 조직의 담당자가 자신의 결재라인에 보고를 해야하며, 여기에서 수많은 지적과 보고와 빨간펜이 튀어나오면서 이미 일정의 지연은 필연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ign off가 되어서 문제가 해결되면 좋겠지만, 이미 제품의 방향을 산으로 나루터로 각각 흐트러뜨려진 경우가 다반사이고, 나중에 뭔가 문제가 발생하거나 확인되면 그때 sign off를 할 때는 왜 몰랐느냐,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은 것이 아니냐까지 책임론으로 넘어가기 십상이죠. 어떤 항목도 제품을 출시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 조직이 사일로 이펙트에 갇혀 있는지를 알아 볼 수 있는 증상은 무엇이 있을까요? 제품개발과정에서 조직간에 리뷰를 할 때에 이런 증상들을 간혹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평소에 너무 익숙해져서 이게 이상한것인지를 깨닫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 증상은 바로 리뷰의 목적을 벗어난 피드백입니다.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전체적인 User Journey를 리뷰하는데, 여기서 이런 디테일이 빠지면 안됩니다 라거나, 예전에 이런이런 시도가 있었는데 그때에 저런저런 이슈가 있었으므로 참고해야 한다…. 같은. 

그 프로젝트의 중심선을 함께 공유하고 있지 않았을때에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지적들은 참으로 맞는 말들이라는데 있습니다. Sentence가 맞는 것은 개인의 돋보임을 될 수 있겠지만, 프로젝트의 목적에 도움이 되거나 방향에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각 사일로가 프로젝트 / 프로덕트의 목표에 Align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사일로의 관점에만 천착하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사일로 이펙트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저는 딱 한번, 딱 한 시점에서 사일로를 극복해보았다고 생각합니다. 사일로가 가장 극심할 것처럼 여겨지는 삼성전자에서의 짧은 시기 동안이었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목적조직도 아니었습니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사일로 이펙트를 극복하기 위해 목적조직을 도입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스쿼드에 같이 탄 사람들이 하나의 목적을 향해 집중해서 나아갈테니까 사일로 자체가 사라져 버릴것만 같겠지만, 사일로 이펙트를 기획/디자인/개발/영업 과 같이 직군 사이에 벌어지는 현상으로 잘못해석했기 때문에 이런 결정을 했을 것입니다. 과거의 조직은 전부가 기능조직이었고 그 환경에서 사일로 이펙트를 관찰했던 것이기 때문에 목적조직이 되면 이 문제가 사라져버릴것만 같겠지만, 목적조직에서는 각 스쿼드와 파운데이션 사이에서 사일로 이펙트가 나타나게 됩니다. 목적조직을 설정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또 긍정적인 측면도 많지만 그것이 사일로를 극복하게 해주는 것은 아닐겁니다.

최근 살인적인 업무강도에도 퇴사하지 않는 엔비디아에 관한 취재기사가 있었습니다. 그 비결은 3천퍼센트 상승한 주가와 스톡옵션/주식보상이라고 했던데, 아주 조금 동의합니다. 만약 저 비결이 전적으로 맞는 말이었다면, 모든 연봉을 많이 주는 조직, 보상을 많이 주는 조직은 퇴사율이 매우 낮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엔비디아의 주가가 지금처럼 “성공” 한 것은 잘 봐줘도 2년 이내입니다. 엔비디아에서 10년동안 근속한 엔지니어는 미래를 예견했던 것일까요?


저 비결을 조금 더 정교하게 설명하자면 성공하는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어떤 의미어서이건 성공하는 경험, 저는 엔비디아에서 오래 근속하시는 분들은 아마도 이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장기근속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상은 그 성공경험에 따라오는 것일 수도 있지만, 외부에서 보기에는 보상이 기표가 되어버리는 일종의 시물라크라 같은 현상일 수도 있겠습니다.

99%의 노력과 1%의 영감. 이 말은 사실 1%의 영감이 없다면 이뤄낼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었다고 하죠. 스타트업이 시장에서 성공하는 것에도 운이 90%는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10%의 무엇인가가 없다면 90%의 운이 따라와도 결국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그 10%가 성공적인 제품의 산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조직의 사일로를 극복하는 방법도 마찬가지로 제품을 성공적으로 산출하는 것의 반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일로 이펙트 때문에 제품이 산출되지 않는데, 제품을 산출하는 것이 사일로를 극복하는 방법이라면 순환참조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 순환참조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제품을 산출하는 과정을 개인기 (개인의 자율적인 역량)에 맡겨두지 말고, 기계적으로 제품을 산출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프로세스는 위에서 언급한 Sign Off 처럼 무언가 확실하고 단단한 돌다리 위에 세우는 것이 아니어야 합니다. 모두 똑같이 불확실성을 딛고 그 불확실성 속에서 방향을 찾아나가는 것으로 설계해야 합니다. 그 프로세스는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최악의 상황만은 피하기 위해서 세우는 것이어야 하고, 최악을 피하면 차악을 보완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해나가야 합니다.


시스템의 도입 / 프로세스의 도입에 대해서 경기를 일으키는 분들도 간혹 봅니다. 아마도 그런분들은 이전의 경험에서 최선을 위해서 물샐틈없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이것때문에 본인의 개인기와 자율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셨던게 아닌가 짐작이 됩니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을 비효율적이고 무쓸모한, 숨막히는 시스템이라고 비유하기도 합니다. 그랬던 분들이 스타트업으로 오시게 되면 "체계가 없다" 라고 비난하시는 것을 마주할 때도 많습니다.
물샐틈없는 시스템도 잘못된 것이지만, 그렇다고 시스템을 죄악시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요즘 생각보다 글변비가 심해서 자주 뉴스레터를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쓰고싶은 글감들은 많은데 뭐랄까 꽁꽁 쌓여가기만 하고 글이 마무리가 되지 못합니다. 이러다가 생성형AI에게 모든것을 맡기게 될까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일단 힘줘서 글을 산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글은 이런 차원에서 2편으로 글을 분할하였습니다 ^^

다음 글 2편에서는 시스템은 악이고, 개인기로 일하는 것이 스타트업처럼 일한다는 것으로 생각하시는 경우를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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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스타트업처럼 일해야해 vs. manners maketh product

(2편) 스타트업처럼 일해야해 vs. manners maketh product

페친분들중에 참 대단한 분들이 많으셔서, 멋진 책을 쓰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마침 부산에 계시는 곽한영 님께서 쓰신 책을 사서 읽다가 (보통 저희들은 구독료를 낸다고 표현합니다만) 이 글에 어울리는 문구를 발견해서 원래 쓰던 글의 제목을 변경해서 들였습니다. Manners maketh man, manner의 의미, 그리고 Mannerism.  “사전적으로 보면 매너는 '일이 되어가는 방식'

By Juno Kwaan

PMF letter: AUG24Y-2

안녕하세요. PMF2호, 4호 조합원 여러분. 대표파트너 콴입니다.  PMF2호와 4호에서 출자한 NK세포연구기업 인게니움테라퓨틱스에서 좋은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인게니움의 넥스트 파이프라인인 고형암 치료를 위한 CAR-NK 세포 연구가 국책과제로 선정되어 1년에 20억원, 3년간 총 60억원을 지원받게 되었습니다. 3년 연구의 성과를 평가하여 추가 2년을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에 최대 100억원에 달하는 연구자금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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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F letter: AUG24Y

PMF 2호, 3호 조합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대표파트너 콴입니다.  무더위에 건강하게 여름을 보내고 계신가요. 입추와 처서를 지나니, 그래도 좀 선선한 바람도 느껴집니다. 30도에도 시원해졌다고 말하는 한국인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여름입니다.  오늘 뉴스레터는 2호와 3호에서 투자한 ‘마지막삼십분’의 좋은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그리고 투자자로서의 lesson learn과 다짐도 담았습니다.  마지막삼십분은 발렛파킹 온디맨드를 운영하는 기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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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ter] PMF update: JUL24Y

안녕하십니까, PMF 개인투자조합 조합원 여러분, 대표파트너 콴입니다. 앞선 letter에서 PMF 05호와 06호로 STS바이오(이하 STS)에 투자하기로 결정하였다는 소식을 전해드렸습니다만, 투자계약서의 검토과정에서 이번 투자가 무산되었다는 아쉽고 죄송한 소식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PMF에서는 05호와 06호, 그리고 프로젝트 04호를 동원하여 총 3.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었습니다만, (STS)에서 투자계약서 검토를 포함하여 상당히 오래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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