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다룬다 : 오래된 미래, 생성형 AI 시대의 PM과 코파일럿 AI

이 아티클은 <AI를 다룬다> 시리즈의 5화이며, 원티드에서 선발행된 글입니다. PMF partners의 이름으로 발행되었기에, 여기에 옮겨옵니다


✍ 오늘의 아티클 

  • 직업의 존재 여부보다는 업의 본질이 중요합니다. 직업의 형식과 명칭은 항상 늘 변해오고 있었으니까요.
  • 생성형 AI가 모든 것을 집어 삼킬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기술의 등장은 늘상 그런 종류의 두려움을 수반하기 마련입니다.
  •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결국 어떻게 그 기술을 이용해 공존할 것인가만 숙제로 남게될 겁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이지만 너무 두려워하지 말기로 합시다. 

가히 생성형 AI가 모든 것을 대체하는 일종의 ‘생성형 AI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창의적인 글쓰기에서부터 비주얼 아트까지 세상 모든 것은 생성형 AI가 학습하고 산출하는 결과물이 될 뿐이고, 그렇게 모든 것이 생성형 AI로 대체될 것 같아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로봇과 결합까지하면 인간의 모든 일을 대체해 버릴 것이라는 주장도 나옵니다. 없어질 직업 리스트가 작성되었고, 그 리스트는 계속 업데이트 되고 있습니다. 

‘우리 PM’이라는 직군은 과연 생성형 AI 시대에 어떻게 될까요. PM의 업무 중 기본이라 할만한 PRD(Product Requirement Document, 제품개발요구사항을 정의하는 문서)를 작성하는 일은 생성형 AI에게 대체될 수 있을까요? 생성형 AI에게 다양한 버전으로 작성된 PRD를 주구장창 학습시킨다면, 과연 AI는 PRD를 자유자재로 산출하고 유즈케이스도 정확히 작성할까요? 또한 발생할 수 있는 예외 케이스를 설정해주고 유저 시나리오, 사용자 플로우도 최적의 상태를 생성해서 제시하게 될까요? 이런 시대가 도래하면 PM들은 이제 PRD를 뽑아내기 위해 생성형 AI를 대상으로 ‘프롬프트 깎는 노인’이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을 해봅니다. 

출처: buildr.com newsletter (picture source: impact)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 어느 누구인들 섣불리 답을 내놓을 수 없겠지만, 필자는 부분적으로는 YES이지만 결론적으로는 NO라고 짐작해 봅니다. 섣부른 결론이라고 생각되시나요? 그렇다면 우리 산업이 지나온 오래된 미래를 되짚어봅시다. 


15년 전 : 실리콘밸리에는 기획자가 없대

대한민국에 스타트업이라는 이름이 유행하기 시작했던 2010년을 전후해서 ‘실리콘밸리에는 기획자가 없다’ 라는 문장이 대 유행을 했었는데요. 문장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고, 용어의 정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차지하고서도 선진문물의 상징과도 같은 실리콘밸리에서 온 이 문장은 당시 여러 분야에서 자리를 잡고 있던 기획자 내지는 웹기획자, 화면기획자, 웹플로우기획자 등의 직업 안정성에 큰 위기를 가져다 주었고, 또 수많은 기획자의 일자리를 사라지게 했습니다. 

이 문장의 포인트는 프로덕트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만 있으면 되고, 제품 디자인 후 그대로 개발로 구현만 하면 제품 산출이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기획자라는 존재는 불필요하고 오히려 제품의 개발과 산출을 방해하는(?) 존재로 묘사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실리콘밸리에서 그러했는지 필자는 잘 알지 못합니다. 저 문장을 주장했던 이와 그 회사가 실제로 기획자가 없이 제품을 잘 산출하고 만들었는지 또한 알지 못합니다. 다만 이 지점으로부터 기획자라는 직군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하고, 수많은 웹 기획자가 PM 또는 PO라는 이름으로 전직했습니다. 

과거에 비해 많이 줄어들어서 찾기 어려워진 ‘기획자’라는 직무는 15년 전의 저 명제처럼 우리나라 산업에서도 실리콘밸리처럼 모두 없어졌나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듯이 그 명칭의 사용이 줄어들었다고 해도 그 역할은 다른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요즘 대부분의 회사들은 PO(Product Owner)를 채용하고 있습니다. PO와 기획자는 동일하지 않지만 PO가 하는 일을 확인해보면 과거 우리 선배 기획자들이 했던 업무의 중요한 부분들이 도구의 발달과 함께 진화해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10년대 후반 : 스포티파이의 조직 구조의 유행

그 후 몇 년이 더 지나서 스포티파이의 조직 구조(Spotify Matrix)가 유행을 하게 됩니다. 해당 조직 구조를 정작 스포티파이는 제대로 돌려보지 못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한참 나중에야 흘러나왔지만, 이미 잘 나가는 회사들은 트라이브와 스쿼드, 챕터와 파운데이션으로 채워진 조직 구조를 선언했고 각 스쿼드를 이끌 PO를 채용하겠다고 나섰습니다. PO중심 조직의 강점을 홍보하고 PO를 mini-CEO라고 규정하고, PO를 대거 채용하겠다는 내용을 투자자에게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PO들은 과연 어디에서 와서 여기에 도착하게 되었을까요.

스포티파이 조직구조로 더 잘 알려진 기능 조직의 구성도 (출처: agility11.com/spotify doesn’t use the spotify model) 


15년 전의 문장으로부터 시작된 ‘기획자의부재’는 약 10년에 가깝게 해당 직종의 단절을 만들게 됩니다. 신규 채용이 없어지고, 훈련되고 육성되는 인력이 사라지고 동시에 자연감소가 계속되면서 10년이 지난 시점에는 소수의 인원만이 남게 되었죠. 그 사이에 우리 산업은 더욱 빠르게 소프트웨어와 IT기술 기반으로 진화했습니다. 그리고 그 단절을 넘어온 소수의 사람들은 이른바 진화를 하며 PO라는 타이틀에 어울리게 됐습니다. 그만큼 PO가 귀해진 시대가 되었고요.  

** PO와 PM은 동일하지 않은 직업군이라고 생각하지만, 회사의 자의적인 기준으로 이 둘은 유사하게 쓰여지기도 하고, 필자가 생각하는 의미와 전혀 다르게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이 두 직군을 구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이 이상의 설명을 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회사에서 어떤 직군명을 어떤 의미로 쓰는지에 대입해 비교해 보시고, 꼭 하나의 특정한 의미만으로 이해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2020년대 : PO의 전성시대와 생성형 AI

최근 브라이언 체스키가 피그마 컨퍼런스에서 에어비앤비에서 PM 직군을 없애겠다고 발표해서 참석자들이 열광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물론 직후에 브라이언 체스키는 “PM의 직무를 PMM (Product Marketing Manager)로 통합하는 것일뿐, PM 직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설명을 추가했지만, 필자는 이 뉴스에서 15년 전 그 문장의 향기를 다시 한 번 진하게 느꼈습니다.

출처: Twitter @kvngao // Figma Config


어쩌면 생성형 AI 시대가 오면서 15년 전 문장으로부터 촉발되었던 PO의 품귀시대도 생성형 AI로 대체되어 사라져 버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해온 오래된 미래는 ‘아마도 꼭 그렇지는 않을 거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명칭이 무엇이 되었건, 어떤 직군으로 구분되건 간에, 업의 본질이 무엇인가 라는 고민입니다.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PM 업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바로 만들고자 하는 제품을 구체적으로 시각화하고 형상화(Visualization) 하는 일, 그리고 이것의 동기화(Sync)에 있습니다.

  • 우리는 무엇(What)을 왜 만들려고 하는가?
  • 그것은 어떻게 (How) 동작해야 하는가?
  • 그 무엇은 어떤 형상을 가질 것인가?
  • 어떤 가치를 누구에게 전달/제공할 것인가? 

이 질문들은 결국 시장으로부터 시작될 것이고, 고객의 컴플레인이거나 영업팀의 관찰, 그리고 어쩌면 그들의 필요로부터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 PM은 이것들을 제품 요구사항(Product Requirement)으로 형상화해냄으로써 의미를 부여하고 PRD의 작성에서부터 시작해, 제품화과정을 관리하며 산출을 완성해야 합니다. 또한, 산출 이후에 지속적인 개선사항과 추가된 요구사항을 수집하고 고객으로부터의 성과도 확인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시장의 트렌드를 파악하고 그 안에서 여러 결정을 하고, 그 결정을 다시 구체적으로 구성하고 시각화/형상화를 시도하여 제품개발 구성원과 동기화하면서 이 과정을 인내심 있게 극복해 나가는 것이 PM 업의 본질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이 업은 과거에는 어떤 기획자, 어느 기획팀이 담당했던 업무일 것입니다. 한때는 코디네이터라 불리는 직업군이 담당하다가 사라지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PM의 업으로 인식되고 있고 어쩌면 생성형 AI 시대 이후에는 또 다른 명칭이 붙여질 지도 모릅니다. 저 역할 중에 어느 부분은 생성형 AI가 대체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어느 세세한 역할에서 생성형 AI를 포함한 도구를 이용하는 직업군이 생겨나고,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직업들은 (지난 15년간 그래왔던 것처럼) 그렇게 변화와 진화를 하게 될 것입니다.

생성형 AI와 함께 앞으로 다가올 미래도 우리의 오래된 미래처럼 그러할까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필자는 업의 본질은 꾸준히 유지되면서 그 어떤 새로운 기술들과도 공존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PM이 생성형AI를 사용하는 예제는 링크를 참고하기 바랍니다. 이번 시리즈의 디렉터인 김영욱 PM이 본인의 저서 프로덕트매니지먼트를 해설하며 작성한 글입니다. 

** 제목 ‘오래된 미래’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저서,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운다>에서 오마주하였습니다.


후술

삶은 달걀 반쪽은 냉면류에 올려져 나오는 단골 고명입니다. 사실 좀 비싼 가게에서는  지단을 내기 마련이지만, 대부분의 식당은 그정도 원가를 들이기 어려워서 삶은 달걀이 올라오곤 하죠. 삶은 달걀의 노른자는 사실 꽤나 다루기 까다롭습니다. 조금만 오버쿡을 해도 녹변이 시작되는데 그렇다고 맛이 없는 건 아니지만 보기에는 그다지 좋지 않죠. 저는 식당들을 다닐 때 달걀노른자를 눈여겨 보는데, 녹변이 없이 잘 만든 달걀을 보면 이 집은 음식에 신경을 깨나 쓰는구나 생각하곤 합니다. 

최근 들어 여느 식당을 가도 녹변이 생긴 달걀 노른자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갑자기 다들 음식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건 아닐 테고, 기실 달걀을 기가 막히게 삶아주는 머신이 등장했기 때문이겠죠. 딱히 인공지능이라고 부를 것도 아니며, 머신이라고 하기에도 멋쩍은 1980년대의 ‘세탁소 콤퓨타크리닝’ 정도 수준의 온도 조절과 타이머에 불과하지만, 이 머신이 일반 식당에 투입되면서부터 삶은 달걀 반쪽의 퀄리티가 높아졌습니다. 필자 입장에서는 음식에 신경을 쓰는 집을 골라낼 장치가 하나 사라진 셈이긴 하지만, 주방 직원이나 주인 입장에서 보자면 정말 효율적인 기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가 직업을 잃어버렸을까요?  달걀을 기가 막히게 삶는 직무가 존재했다거나, 혹은 그런 달걀을 공급하는 개인이 있었다면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음식을 한다는 업의 본질에서 보자면 주방 직원은 달걀을 제대로 삶는 역할을 머신에게 맡김으로써 그 에너지를 새로운 곳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진화라고 부를만큼 대단치는 않지만, 아주 약간의 변화가 생겨난 지점이고, 이 지점에서는 그 도구는 업의 본질과 공존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여전히 불안을 갖고 있을 분들을 위해 지난 1월 다보스 포럼에서 AI를 바라보는 세 명의 CEO의 생각을 공유하며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출처: Pickool, Philip Lee, JAN24Y. 


“현재까지는 AI의 한계가 존재하고 자율 주행 차량에 쓰일 정도는 아니지만 브레인스토밍, 코드 정확도 평가에는 쓰일 수 있다. 장기적으로 인간의 업무는 추상적인 부분에서 운영되고 나머지는 점점 AI로 이관될 것이다.”  _ OpenAI 샘 알트만 

“AI에 대한 신뢰가 아직 부족하다. 현재까지 AI가 잘하는 부분은 MRI/CT 촬영물을 분석하는 정도다.”  _ 세일즈포스 마크 베니오프

“오래 전 이메일이 처음 등장했을 때, 당시 회사의 보안 부서에서는 이메일이 위험하므로 파일을 첨부해서 보내지 말 것을 권고했다. 기술의 발전에서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결국 기술의 발전은 점점 더 인간의 업무 중 본연의 가치에 집중하게 한다.”  _ 엑센추어 줄리 스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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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권준호 PMF파트너스 매니징 파트너 
한때는 신사업기획을 하다가 창업을 했었다. 창업자로서 PM의 역할을 바라보기도 했었으며,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에서 삼성페이의 PM으로 한국버전을 출시했다. 또 엑셀러레이터(Shift.)에서 동남아시아 지향 투자를 하기도 했었다. 투자자로서 엑셀러레이터의 한계를 느껴 Product Market Fit 이라는 슬로건으로 개인투자조합을 시작했으며 그 사이 소위 빅테크 기업에서 PO/PMO로 Production Process / PMF에 관심을 가지고 일했다. 그리고 2024년 PMF파트너스를 시작했다.


발행일 2024.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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