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D를 제대로 씁시다

포지션과 연차에 맞는 JD. 당신은 써본적 있나요. 

아무래도 여러 경로를 통해서 PO를 채용하고 싶다던가, 소개해달라거나 하는 요청을 받는 일이 왕왕 있다. 친한 대표님에서부터 포트폴리오사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때로는 내가 속한 조직에서 채용을 하려 할 때에도, “좋은PO를 추천해주세요” 는 너무 쉬운 말이지만, “그럼 JD를 줘보세요”에 대한 응대는 세상 어려운일이 아닐수 없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그 일이 나에게만 어려운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당장 어느 큰 기업의 채용사이트에 가서 Product Owner / Manager 의 JD를 살펴보거나, 서치펌(헤드헌트) 전문가들로부터 포지션 추천을 받고 JD를 받아서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놀랄만큼 모든 기업의 JD가 유사하다. 분명히 기업의 인더스트리와 스테이지가 다르고, 업무의 성숙도라던가 연관부터/기업과의 업무에 차이가 날텐데도 불구하고. 아 역시 세상 PO들은 다 유사한 일을 하는것인가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정말 대단한 슈퍼맨을 아무렇지도 않게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분명히 5년차이상을 채용한다고 되어 있는데, 세상에 5년차들은 저런일을 다 해낼수 있는 사람들이란 말인가. 나는 20년이 넘도록 대체 무얼하고 있었길래…


부서장 혹은 담당자들이 채용을 하고자 하면 일단 TO를 확보하고 인사팀/재무팀/경영진과 협의를 하고나면, 그냥 “좋은PO”를 뽑아오면 될텐데, 인사팀/채용팀에서는 JD 작성을 요청하면서 여기저기 큰 기업의 JD를 레퍼런스로 전달해주게 되고, 우리 회사의 표준 JD, 최신형 맥북 지급이라던가, 도서구입비 지원, 점심식대 무제한 같은,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고의 동료가 최고의 복지, 로켓에 올라타세요 같은 말이 적혀진 문서를 전달해주게 된다. 이제부터 나는 다른 JD에 적혀있는 요구사항과 우대사항 등을 적당히 짬뽕해서 정말 좋은 사람만이 지원할 수 있을 것 같은 우리의 JD를 작성하고 여기저기 게시하게 된다. 

우리는 그 JD를 보고 어떤 사람들이 지원하기를 기대하게 될까.  

일단 우리의 JD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모든것을 다 해본 수퍼맨인데 주니어 연차인분을 구합니다” 
신입사원을 뽑는데 이런저런 경력이 있는 분을 모십니다보다 현실적으로는 더 달성하기 어려운 조건이 탄생했다. 

JD의 요구사항은 결코 주니어가 완수했을리 없는일들이다. 운이 좋게 그런 과업을 경험하고 완수한 적이 있는 팀에서 막내로 그 일을 곁눈질했다는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그럼 그 주니어가 이전 회사/팀에서 빼돌려서 가지고 있는 자료를 포트폴리오로 생각하면 되는 걸까? 


JD를 작성한다는 것은 우선 내가 하는 업의 이해를 선행하면서 업의 정의를 작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늘 해왔던 그대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전에 JD를 통해서 업의 정의를 내려본 적이 없이 일해왔다면 여전히 지금도, 그리고 지금의 JD에서도 업의 정의를 내릴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좋은 사람을 뽑고싶으니까 좋은 사람이 지원할만한 JD를 오늘도 작성하고 있다. 

그런 JD를 발행하면, 어떤 사람들이 지원하게 될까. 그리고 실무인터뷰어로 나설 당신은 어떤 사람과 어떤 인터뷰를 보게될까. 
혹시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이 무엇이냐거나, 정말 어려웠던 문제를 해결한 경험을 들려달라는 선문답을 하게 될까? (해왔던대로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내가 인터뷰이 일때 들었던 질문을 그대로 반복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마음속 깊은곳의 내면을 터치해서 그사람의 진면목을 한시간 인터뷰에서 발견해내려 노력할 것인가. 그 진면목은 과연 실무역량과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일까. 

인터뷰 결과 당신은 결국 어떤 사람들을 뽑게될까. 

  1. 그 업을 잘 이해하고 단독 수행할수 있는 시니어
  2. 뭔지 잘 모르지만 해봤다는거 같기는 하고 대단한일을 했다는 주니어. 나를 상당히 서포트해서 이 일을 해낼것만 같다. 
  3. 열정과 절실함으로 가득찬 패기양양한 프레쉬맨. 패기와 태도에서 이미 합격이다. 

본인이 뽑을 사람과 회사가 원하는 탈렌트 사이의 간극, 그리고 시장에서 이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실질적으로 요구되는 탈렌트와 내가 채용할 사람 사이의 크레바스가 존재하지 않을까. 어차피 내가 모르면 회사도 모르고, 회사도 모르면 시장도 모르는 거니까 오답인지 정답인지도 아무도 모르니까 모두가 윈윈인거 아닐까. 


십년쯤 전에 Ka 모사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었다. 게임 쪽 파트였었는데, 창업했다가 망한 회사는 InGameAD였기 때문에 게임과 연관이 있는 분야였고, 지인이 사내추천을 해주면서 인터뷰를 볼 수 있었다. 
흔히들 이뤄지는 그런 상투적인 질문들이 이어진 끝에 마지막 질문이 나왔다. 만약 입사하신다면 어떤 사업이나 기회를 해보고 싶으신가요. 미리 준비해갔던 모범답안대로 ‘유행하는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바스나 파스 (Backend / Platform as a service)로서의 사업을 기획해보고 싶다’ 라고 답변을 했고, 그때까지 아무런 질문도 없이 듣기만 하던 한 인터뷰어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인터뷰에서 그런 신조어를 지어내시면 안됩니다. 제가 이 분야에서 일한지 7년이 넘어가는데 그런 말은 들어본적도 없네요’ 

아마도 포지션은 사업기획 정도였을 것 같다. 시간이 오래 지나서 JD는 물론이거니와 진행과정에서 별다른 내용은 기억이 나질 않지만, 인상적인 인터뷰여서 오랜동안 기억에 남아있다. 과연 그 인터뷰는 어떤사람을 뽑기 위해 진행했던 것일까. 

그로부터 6년의 시간이 흘러서 이번에는 Ka 모사의 또다른 부문에서 인터뷰에 응하게 되었다. Product Manager 포지션이었을 것 같은데 역시 별다른 JD나 내용은 기억에 남아있지 않지만 인상적인 한마디는 또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다. 

‘절실하지 않은것 아닙니까? 절실하지 않은데 왜 당신을 우리가 뽑아야 하죠?’ 

반성하건데 절실하지 않았다.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았지. 들키지 말았어야 했는데 반성한다. 이번 인터뷰는 어떤 역량을 가진 사람을 뽑고싶었던 것일까? 역량은 모르겠고 그저 절실했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다시 4년의 시간이 흘러서 KaH 사의 JD를 받아보게 되었다. 5년차 이상을 채용한다는 JD에서 나는 수퍼맨을 보았다. 도저히 나는 저 요건사항을 다 충족하지 못할것만 같았다. 요즘 5년차는 저정도를 해내야 하는구나. 참으로 조금 먼저 태어나서 천만다행이다. 고작 십몇년만 늦게 태어났어도, 나는 이 사회에서 사람구실하며 월급받을 수 있었을까 하는 한탄이 절로 나왔을 것이다. 

참으로 나는 Ka 와는 결이 맞지 않는가보다. 무려 세번이나... 다른 KaP 사에서는 합격하여 연봉오퍼를 받은적이 있다. 지나치게 험블하여 거절하긴 하였지만 그래도 내가 Ka에 합격할만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어서 감사하다. 그때 합류했더라면 우리사주의 노예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노예해방을 이루어준 또 다른 기업에도 감사한마음을 가져본다.


오늘도 당신은 JD를 작성하고 인사팀은 JD를 게시하며, 누군가는 그 JD를 보고 지원을 하고, 헤드헌터들은 그 JD를 보고 인재를 찾아다닌다. 그리고 그 JD를 통해 접수된 CV/Resume를 보며 당신은, 혹은 누군가는 지원자를 평가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JD는 도대체 어떤 사람을 채용하기 위해 작성되었는가. 그 인터뷰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을 채용하기 위해서 수행되는 것인가. 그 질문들은 그 사람에게서 어떠한 역량을 확인하기 위해서 묻고 던지는가. 
그래서 당신은 결국 누구에게 ‘너 내 동료가 되어라’ 라고 말하게 될까. 
며느리도 모른다?

Product Manager를 채용하고자 한다면, 먼저 PM이 어떤 일을 ‘이 회사’ 에서 하게 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문장으로 작성해보기를 권한다. 그리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JD를 작성한다면 좀 더 적확한 역량을 보유한 분을 만날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혹은 최소한 지원자와 인터뷰를 진행할 때에 더 적절한 질문을 던질 수 있지 않을까? 마치 QA 팀에서 정확한 use case를 가지고 있다면 더 좋은 품질의 QA를 완수할 수 있는 것과 동일할테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PM이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영 모르겠다면 아래 하나의 글과 하나의 책을 참고해보면 좋겠다. 

<Product Manager의 허상과 현실>

최신 HBR에서 "Product Manager의 허상과 현실"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요즘 PM이 인기는 인기인가 봅니다. 그러려면 거품이 아닌 PM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겠죠. 이 글에서는 그 역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Feat by 김영욱PM Facebook. 

<프로덕트 매니지먼트, 한빛미디어, 김영욱 지음>

10쇄에 도달하면 공로상을 받을 예정인 책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제품문화는 반드시 제품 과정으로 발현된다 는 대목이다. 제품 과정 (Product Development Process)를 어느정도의 해상도로 가지고 있는 기업이라면 그 단계에서 어떤 일을 해야하는지 어떻게 해야하는지 더 좋은 JD를 작성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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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스타트업처럼 일해야해 vs. manners maketh product

(2편) 스타트업처럼 일해야해 vs. manners maketh product

페친분들중에 참 대단한 분들이 많으셔서, 멋진 책을 쓰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마침 부산에 계시는 곽한영 님께서 쓰신 책을 사서 읽다가 (보통 저희들은 구독료를 낸다고 표현합니다만) 이 글에 어울리는 문구를 발견해서 원래 쓰던 글의 제목을 변경해서 들였습니다. Manners maketh man, manner의 의미, 그리고 Mannerism.  “사전적으로 보면 매너는 '일이 되어가는 방식'

By Juno Kwaan

(1편) 조직의 사일로를 극복하기

“조직에서 서로가 서로를 해치지 않는다는 믿음은 꽤 중요하다. 그래야 서로 가드를 내리고 대화라는걸 할 자세가 된다.” 맞는 말입니다.  여기에 대한 누군가의 답변은 “사장이 제정신이 박혀서 사내정치하는 것들을 쳐내야…” 였습니다. 이것도 굳이 틀린말은 아닙니다.  이런 조직간의 견제가 극대화되는 현상을 우리는 사일로 이펙트 라고 부릅니다.  한때 이 사일로 이펙트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By Juno Kwaan

PMF letter: AUG24Y-2

안녕하세요. PMF2호, 4호 조합원 여러분. 대표파트너 콴입니다.  PMF2호와 4호에서 출자한 NK세포연구기업 인게니움테라퓨틱스에서 좋은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인게니움의 넥스트 파이프라인인 고형암 치료를 위한 CAR-NK 세포 연구가 국책과제로 선정되어 1년에 20억원, 3년간 총 60억원을 지원받게 되었습니다. 3년 연구의 성과를 평가하여 추가 2년을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에 최대 100억원에 달하는 연구자금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본

By Juno Kwaan

PMF letter: AUG24Y

PMF 2호, 3호 조합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대표파트너 콴입니다.  무더위에 건강하게 여름을 보내고 계신가요. 입추와 처서를 지나니, 그래도 좀 선선한 바람도 느껴집니다. 30도에도 시원해졌다고 말하는 한국인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여름입니다.  오늘 뉴스레터는 2호와 3호에서 투자한 ‘마지막삼십분’의 좋은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그리고 투자자로서의 lesson learn과 다짐도 담았습니다.  마지막삼십분은 발렛파킹 온디맨드를 운영하는 기업입니다.

By Juno Kwa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