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하는가

텍스트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하는가
(출처: 신서유기 TVN)

구독하고 있는 모 HR 기업의 뉴스레터에서 흥미로운 제목을 발견했습니다. 
불필요한 회의 없애는 텍스트 소통법 (더 빠르고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의 핵심 전략)
저는 텍스트 커뮤니케이션을 신뢰/신봉하는 사람으로서 이 뉴스레터를 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정기회의의 힘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회의무용론자들을 참 싫어합니다. 특히 ‘비효율적인 회의’ 라거나,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 같은 말을 들으면 “왜죠?” 라고 물어보고 싶은 욕구가 목구멍끝까지 차오르는 사람이기도 하죠 ^^. 오늘의 뉴스레터는 저의 이런 성향을 참고하시면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이 뉴스레터는 4개의 챕터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왜 텍스트 중심 커뮤니케이션이 필수적이지?
📍텍스트 중심 의사소통은 어떤 원칙이 있을까?
📍그렇다면 더 나은 소통을 위해 어떻게 글을 써야 할까?
📍텍스트 중심 커뮤니케이션, 단점은 없어?


일단 기본적으로 다 맞는 말들입니다. 위 4개의 챕터 내용에 대해서 저도 동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뉴스레터에 나오는 내용을 숙지하고 ‘아 나도 이렇게 해야지’ 라고 다짐을 한다고 해도, 당장 무엇부터 해야할지 잘 모를겁니다. 왜냐하면 저 뉴스레터의 내용들은 모두가 다 훌륭한 텍스트 커뮤니케이션을 한다고 가정했을때에 관찰되는 현상일 뿐이거든요. 그래서 중요한건 “어떻게” 텍스트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할 수 있는가 입니다. 

뉴스레터의 시작이 되는 이 문장 [불필요한 회의와 구성원 간의 지식 편차를 줄여요(투명성이 높아져요)] 은 잘못된 내용입니다. 그냥 틀렸습니다. 텍스트커뮤니케이션은 절대로 불필요한 회의를 줄여주지 않습니다. 구성원간에 지식편차 (understanding level)을 줄여주지 않습니다. 여기에 저맥락 커뮤니케이션을 해야한다는 식의 내용을 추가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구요? 
텍스트 커뮤니케이션은 우선 회의를 줄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훌륭한 텍스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조직에서 회의가 덜 필요해질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특정 상황에서 얻어지는 것들 중 하나이지, 그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지식편차를 줄이는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훌륭한 텍스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조직에서는 지식편차가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단적으로 훌륭하게만 커뮤니케이션 하면, 텍스트로 하건 버벌로 하건 그림으로 하건 무용으로 하건 회의나 지식편차는 줄어들 수 있습니다. 


어느 회사에서 일할 때에 원격근무가 일반화되면서 일종의 그라운드 룰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이럴때 등장하는 것이 보통 저맥락 커뮤니케이션이라던가 비동기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지극히 맞는 말이고 모두 동의했지만 과연 그렇게 되었을까요? 이런 것들은 일종의 지향점과 같은 것들입니다. 그래서 원래 달성되지 않는 것이에요. ‘마음가짐으로서 가지고 가자’와 같은 정도입니다. 

(반대로 에어팟을 사용하지 말고 별도의 오디오 시스템을 사용하거나 이어마이크셋을 사용할 것을 그라운드 룰에 포함시켰고 지켜졌습니다에어팟은 특히 다자간 대화에서 노이즈나 하울링을 만들 가능성이 높고, 높은 수준의 룸톤/화이트노이즈를 포함하기도 합니다. (최근 업데이트 이후로는 많이 개선되었지만) 상대적으로 목소리가 멀게 느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인의 목소리를 다시 듣지 않기 때문에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문제가 분명하고 솔루션이 분명하면 지켜집니다. )

같은 회사에서 입사인터뷰를 할 때에 이런 일화가 있었습니다. 
저는 어느 인터뷰에서나 문서작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합니다. 대부분의 회사는 문서작업이 잘 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달리 이 회사에서는 (다른 회사의 인터뷰와는 달리) ‘문서작업의 중요성’이 잘 먹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들었습니다. “너무 많은 문서를 만들고 그 문서의 뒤에 숨어서 무능력함을 감추고 있다” 입사하고 나서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수 있었습니다. 
이 문서들은 많은 그림과 더 많은 텍스트, 그리고 상당수의 링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바로 텍스트 커뮤니케이션이죠. 
수많은 종류의 회의가 존재했고, 그중에 상당수가 “효율적”인 업무를 위해 서면으로 대체된다고 공지되었고,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정기회의 참석은 거절당하기 일수였습니다. 
이 조직은 아주 효율적으로 일하는 조직이었을까요? 

효율적으로 일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로 한번 다루어 보겠습니다. 간단하게 맛만보고 넘어가자면 효율이란 결과 대비 투입으로 계산될 것입니다. 
즉 A 라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데에 어떤 조직은 5명이서 4주를 사용하고, B 라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데에 어떤 조직은 10명이서 2주를 사용했다고 가정할 때에, A와 B 가 동등하다고 선언한다면 효율성을 계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리얼월드에서 효율성을 계산할 수 있을까요? 

저는 산출물을 내는데에 더 효과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 PRD 작성을 제안했습니다. 아주 많은 문서들이 가득했지만 PRD의 기능을 하는 문서는 존재하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추가문서를 만드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이 작업은 오랜동안 표류했습니다. 후에 PRD를 작성하게 되었고 분명 이전보다 더 효과적인 문서라고 생각하지만, 아마 일선의 담당자들은 비효율적으로 문서를 또 하나 만들어내야 한다는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제 능력이 그만큼이 아니었다는 점이 아쉬운 대목입니다. 

그 이후로 저는 PRD를 주제로 여러 강의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PRD/MRD로 이루어지는 일련의 문서 세트야 말로 텍스트 커뮤니케이션의 실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PRD를 비롯한 텍스트 덩어리를 써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만들고자 하는지 사실은 요청하는 사람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텍스트 커뮤니케이션은 어렵습니다. 반면 버벌 커뮤니케이션은 쉽습니다. 대충 생각나고 떠오르는대로 얘기를 하면 뇌가 입술에 달린것마냥 술술 나오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말로 할때에, A4용지 이면지에 이런저런 그림을 찍찍 그려가면서, 화이트보드에 상상력을 표현해나가면서 말할때에 모든것이 다 분명한 것 같습니다. 말하는 그 순간에 그 뇌 안의 유니버스에는 이미 그 유니콘이 완성되어 오버더레인보우 에덴동산을 맘껏 달리고 있습니다. 도파민이 극도로 분비되고 있을겁니다. 
그걸 글로 작성해보면 어떻게 될까요? 몇주전에 써놓은 연애편지마냥 눈뜨고 봐줄 수 없는 수준의 글이 되기 십상입니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그 글이 그 제품을 보다 더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고 텍스트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기 위해서 (짧고 간결하게, 아마존처럼 30단어 이하로) 라거나, 형용사나 부사 대신 수치와 데이터로, 주관적 느낌보다 자료를 제시하자 라고 해봤댔자 그 텍스트 커뮤니케이션은 훨씬 더 어렵고 힘들어 질 뿐입니다. 그러면 마치 “모든 회의를 영어로 진행했더니, 회의가 더 짧아지고 비효율이 제거되었어요” 와 같은 결과를 얻게 되실겁니다.

이렇게 어려운 텍스트 커뮤니케이션 왜 해야 하는걸까요? 
기존의 제품 생산과정에서의 커뮤니케이션들이 방법과 종류를 막론하고 대체로 “고요속의외침”과 같은 수준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경우를 상당히 많이 보아왔습니다. 문서를 열심히 작성하는 조직에서도, 반대로 문서를 거의 전혀 작성하지 않는 조직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신서유기에서 자주하는 게임: 고요속의 외침: 출처 TVN

(제게는 PRD/MRD로 대표되는) 텍스트커뮤니케이션은 제품을 더 분명하게 원하는대로 만들어내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비효율적인 회의를 제거하기 위해서라거나, 혹은 다른 어떤 모종의 목적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텍스트 커뮤니케이션은 대체 하라는거야 말라는거야?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다는 거야? 당신은 뭔가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 
텍스트 커뮤니케이션은 크게 보면 제품문화의 일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젠장, 제품문화는 또 뭐야! > 이건 앞선 뉴스레터 “우리는 해왔던 그대로 다시 하고 있을 뿐”“CPO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요”  를 읽어봐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텍스트 커뮤니케이션도 제품개발과정(Product Development Process) 안에서 생각해야 하고, 여기에 맞는 Framework이 있다면 더 쉽게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제품개발과정이나 PRD/MRD의 Framework에 관해서는 다른 글에서 다시한번 다루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내용이 너무 길거 같아요.


오늘 글은 여기까지입니다. 텍스트 커뮤니케이션도 컬처핏인터뷰처럼 부르다가 내가먼저 죽을 그 이름 (2) 가 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 다음글도 관심가져주시기 바라고, 아래 링크를 통해 뉴스레터 구독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Ps. 텍스트 커뮤니케이션 Framework에 대해서 최근 어느 스타트업의 PM을 대상으로 프로덕트 코칭을 여러주 진행해왔습니다. 그리고 모 기업에서도 1.5일간 intensive workshop 형식으로 세션을 진행했습니다. 
해당 기업에서의 반응도 너무 좋고, 후속 강의도 요청을 받고 있어서 내심 뿌듯했습니다. 무엇보다 세션에 참석하신 20분이 모두 열심히 참여해주시는 것이 기뻤습니다. 몇몇 분들은 따로 링크드인으로 1촌 신청도 해주셨구요. 
개인적으로 PRD의 효용성을 인정받은 것 같아서 더 보람있었습니다. 

본문에서 언급된 종류의 문제를 겪고 계신 기업이 있다면 제가 프로덕트 코칭이나 intensive workshop을 진행해드릴 수 있으니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Read more

(2편) 스타트업처럼 일해야해 vs. manners maketh product

(2편) 스타트업처럼 일해야해 vs. manners maketh product

페친분들중에 참 대단한 분들이 많으셔서, 멋진 책을 쓰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마침 부산에 계시는 곽한영 님께서 쓰신 책을 사서 읽다가 (보통 저희들은 구독료를 낸다고 표현합니다만) 이 글에 어울리는 문구를 발견해서 원래 쓰던 글의 제목을 변경해서 들였습니다. Manners maketh man, manner의 의미, 그리고 Mannerism.  “사전적으로 보면 매너는 '일이 되어가는 방식'

By Juno Kwaan

(1편) 조직의 사일로를 극복하기

“조직에서 서로가 서로를 해치지 않는다는 믿음은 꽤 중요하다. 그래야 서로 가드를 내리고 대화라는걸 할 자세가 된다.” 맞는 말입니다.  여기에 대한 누군가의 답변은 “사장이 제정신이 박혀서 사내정치하는 것들을 쳐내야…” 였습니다. 이것도 굳이 틀린말은 아닙니다.  이런 조직간의 견제가 극대화되는 현상을 우리는 사일로 이펙트 라고 부릅니다.  한때 이 사일로 이펙트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By Juno Kwaan

PMF letter: AUG24Y-2

안녕하세요. PMF2호, 4호 조합원 여러분. 대표파트너 콴입니다.  PMF2호와 4호에서 출자한 NK세포연구기업 인게니움테라퓨틱스에서 좋은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인게니움의 넥스트 파이프라인인 고형암 치료를 위한 CAR-NK 세포 연구가 국책과제로 선정되어 1년에 20억원, 3년간 총 60억원을 지원받게 되었습니다. 3년 연구의 성과를 평가하여 추가 2년을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에 최대 100억원에 달하는 연구자금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본

By Juno Kwaan

PMF letter: AUG24Y

PMF 2호, 3호 조합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대표파트너 콴입니다.  무더위에 건강하게 여름을 보내고 계신가요. 입추와 처서를 지나니, 그래도 좀 선선한 바람도 느껴집니다. 30도에도 시원해졌다고 말하는 한국인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여름입니다.  오늘 뉴스레터는 2호와 3호에서 투자한 ‘마지막삼십분’의 좋은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그리고 투자자로서의 lesson learn과 다짐도 담았습니다.  마지막삼십분은 발렛파킹 온디맨드를 운영하는 기업입니다.

By Juno Kwa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