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해왔던 그대로 다시 하고 있을 뿐 (내마음속의MVP 2편)

우리는 왜 MVP를 만들면서 항상 그렇게 수많은 무엇인가를 넣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내 마음속의 MVP에는 왜 이런거 저런거 요따시만한것들이 모두 포함되어야만 했을까. 
이게 있으면 더 잘될거 같고, 이걸 넣으면 더 많은 뭔가가 생길것 같고, 이렇게 하는게 소비자가 우리에게 기대하는 거야 등등 수많은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나의 결론은 단 한가지다. 

“우리는 늘 일해왔던 그대로 일하기 때문”

이전에 했던 프로젝트에서 이전에 일했던 회사에서 이전에 경험했던 무엇인가에서 습득하고 만들어온것들, 그것을 이번에도 우리는 사실 그대로 복붙으로 반복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왜 하는지를 생각하기 이전에 이렇게 기획을 하고, 왜 하는지를 생각하기 이전에 화면정의서를 그리고 스크린샷을 따기 시작한다. 일상적으로 화면간의 화살표를 연결하고 화면정의서의 다음장으로 향하게 된다. 


2000년을 전후해서 로마인이야기(시오노 나나미) 라는 시리즈가 대유행을 한적이 있었다. 그저 재미있게 읽었고 흡입력있는 문장이었다는 인상비평 외에 그다지 기억나는 지점은 없다. * 물론 이후에 이 소설의 역사에 대한 심대한 왜곡, 많은 부분 사학적 근거가 없거나 혹은 사학의 결론과 배치되는 지점이 존재한다는 것, 또 작가의 인종/지역/여성 차별적인 태도 등 비난받는 부분이 아주 많이 부각되었고 그래서인지 그 이후의 후속작들은 정말 기억에서 ZERO에 수렴하게 되었다. 

단 한가지 기억에 남아있는 대목이 있다면 로마가 중보병을 주력부대로 운영하면서 기병을 중심으로 하는 적군에게 고전하는 대목을 서술하면서 덧붙였던 한마디이다.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잘 해왔던 것을 스스로 바꾼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안타깝게도 저 말의 인상과는 별개로 시오노나나미의 전투씬 묘사와 군제, 중기병과 경기병, 중보병의 전술에 대한 설명은 상당히 오류투성이였다고 평가되고 있다. 다만 이것은 그녀의 무지와는 별개로 참고하였던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가 오류투성이였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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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어떠한 종류의 경험이 남았다면, 그리고 우리가 그 경험을 습득하였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체화되어 남게 될 것은 당연하며, 그렇게 학습하는 것이 인류의 진화에는 당연한 것이리라 생각한다. 다만 환경(제품과 시장, 그리고 프로젝트)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특히 현재에는 그 차이가 과도하게 벌어지기도 하는데다가, 만약 앞선 경험이 더더욱 구조적으로 완성되어 있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것을 다음 스테이지에서 그대로 반복하는데에는 여러 문제와 맞딱뜨리게 될 뿐이다. 그렇게 우리가 미지의 문제와 마주쳤을때에 해왔던 그대로를 무지성으로 반복하는 것 외에 다른 접근방법이나 공략법을 가지고 있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저 기능공과 같은 상태가 아닐까. 문제의 해결을 업의본질로 하는 PM들에게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산업이나 카테고리 또는 스테이지를 한정지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어떻게든 성공한 경험을 스스로 내재하고 있다면 그것은 개인에게 큰 자산임과 동시에 반대로 한계나 제약이 될 수도 있다. 성공한 경험은 유연하게 확장할 수 있어야 한다. 유연하지 못한 (나름의) 성공경험은 바뀌기 어렵다. 


요새 어느 검사님의 수사방식이 시끄럽게 회자되고 있다. 그 진실은 내가 탐구할 영역이 아니라 아는바가 없으나 흘러다니는 내용이 맞다면 아마도 오늘의 주제와도 연결되지 않을까 싶다. 

수단이 어쨌건 결론에만 도달하면 된다는 강력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어떤 케이스에서 상대에 대한 접근법이 효과적으로 작동을 했다면, 그 뒤에는 빠르게 (정해진) 결론에 도달해야 하는 맵핵 케이스라던가 혹은 예상하기 어려운 허들을 마주쳤을때 모든 과정을 스킵할 수 있는 크래킹의 방법으로 쉽게 그 방법을 재선택하게 될 것이다. 한두번쯤 그게 문제를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대세에는 지장이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이런 과정들이 반복되면 그 방법외에 다른 옵션을 가지고 있지 않게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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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새로운 포지션을 채용하는 JD 를 보면, 무엇무엇을 경험해보신분 이라는 문구가 단골로 붙어있게 마련이다. 기업의 포지션이란 어떠한 목적대상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기업내부에 그 경험을 가지고 있지 못하거나 혹은 인더스트리에 대한 이해와 경험을 통해 빠른 온보딩을 원하는 경우일 수도 있다. 

하지만 JD의 이런 요건은 경우에 따라서는 인더스트리의 경험은 있지만 반대로 방법론의 측면에서는 경직된 레거시를 선택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그 인더스트리의 어떠한 부문에 대한 경험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는 경직된 하나의 방법만을 경험하였고 이것이 성공적으로 내재화되었다면 향후 동일한 인더스트리라고 하더라도 다양한 문제를 만났을때에 그 문제를 정의하는 것으로부터 유연하게 시작하기보다는 내재화된 “한번 먹혔던” 방법론을 무지성으로 반복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많은 기업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앞서 인더스트리에서 집적한 경험을 돈으로 사서 시간을 줄이는 방향으로 접근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여러곳에서 각각 다르게 고착화된 방법론들이 집적되게 되고, 덜 유연한 쪽으로 흡수되면서 결국 구성원들에 의해 최적화하여 고착된 방법론이 남게 된다. 그 뒤로부터는 모든 접근하는 문제에 대해서 이 방식을 반복적용하게 되기 십상이고, 그 결과는 MVP를 만들어서 빠르게 배포해야하지만, 내마음속의 MVP는 당연히 해왔던대로 모든것이 포함되어야 한다로 귀결된다. 


이전 편의 “내마음속의 MVP” 를 1편으로, 후속 글을 발행하면서 MVP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정리해보았다. 우리들 PM이 제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산출의 과정으로서는 매우 기계적인 프로세스를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행위라는 관점에서는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특히 표면적인 요구사항이 아니라 문제 그 자체를 정의하고나서 그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제품으로서의 요구사항을 발견해야 한다는 점에서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결국 필자도 사실 해왔던 대로, 특히 성공적이었다고 경험한 그대로 하고 있다는 점을 절감하고 있다. 아마도 언젠가는 혹은 이미 나의 방식은 고착화된 구닥다리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아직까지는 여러 기업의 케이스를 만나볼때에 부재한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전체프로세스의 도입 이후에 구성원들이 계속 변경/개선해나가는 것을 전제로 프로덕트 프로세스를 코칭하고 있다. 

혹시 나의 코칭을 받으시면서 “야 너두? 이미?” 라는 생각이 든다면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니 한번 조용히 넘어가주시면 감사하겠다. 

또 하나의 화요일이 지나간다. 다음주 글감을 고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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